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이른바 ‘논두렁 시계’ 보도에 관여했다고 보도한 기사에 대해 대법원이 “정정보도를 하라”고 판결했다. ‘논두렁 시계 보도’란 지난 2009년 나온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 부부에게 스위스 명품 시계를 뇌물로 제공했고 권양숙 여사가 봉하마을 논두렁에 이를 버렸다’는 내용의 보도다.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이 전 부장이 노컷뉴스(CBSi)와 이 회사 논설실장 및 기자를 상대로 낸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소송 대상이 된 기사 두건 모두 정정보도를 하고, 한건에 대해선 1000만원 손해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원심 법원이 두 기사 모두에 대한 이 전 부장의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를 인용했기 때문에 대법원은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내 다시 심리하라고 했다.

지난 2018년 6월 노컷뉴스는 “국정원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키우려는 목적으로 언론에 정보를 흘린 것에 이 전 부장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제1기사)는 내용의 기사와 “(논두렁 시계) 의혹을 언론에 흘린 것이 검찰이었고 이는 국정원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에게 도덕적 타격을 주기 위한 국정원의 기획이었다’며 사실을 시인했다”(제2기사)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이 전 부장은 “보도는 국정원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시계 수수 의혹을 언론에 흘리는데 제가 개입했음을 암시하는데, 이는 진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지난 2018년 9월 정정보도와 약 2억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노컷뉴스의 보도가) 이 전 부장이 의혹을 언론에 직접 흘렸다거나 국정원이 의혹을 흘리는데 협력했다는 의미로 보이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2심에선 이 전 부장이 승소했다. 2심 재판부는 노컷뉴스의 보도를 허위사실로 판단한 뒤, 위법성 조각 사유(어떤 행위가 범죄의 구성요건에는 해당하지만 위법성이 없어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는 사유)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그동안 대법원은 “언론 보도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때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허위사실이더라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를 위법성 조각사유로 봐왔다. △적시된 사실의 내용 △진실이라고 믿게 된 근거나 자료의 확실성과 신빙성 △사실 확인의 용이성 △피해자의 피해 정도 등을 종합해 작성자가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적절하고도 충분한 조사를 다 했는가 등을 판단해 위법성 조각사유 여부를 결정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노컷뉴스가 이미 알려진 언론보도 등을 참고한 외에는 이 사건 기사에 암시되거나 적시된 각 사실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위법성 조각사유가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정정보도문을 게재하고, 회사와 기자에게 공동으로 3000만원의 배상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당시 논설위원에게는 회사와 공동으로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두 기사 모두에 대해 정정보도를 해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노컷뉴스 기자들이 보도 사실을 수긍할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하지 않았고, 이 전 부장이 그 허위에 대한 증명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정정보도청구를 인용한 원심판단은 수긍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언론은 허위사실을 보도했을 때 고의나 과실, 위법성이 없더라도 정정보도를 해야 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논두렁 보도에 이 전 부장이 관여한 걸로 알려졌다’는 내용의 1기사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결을 위법성 조각사유가 있다며 뒤집었다. 대법원은 “기사의 목적이 공직자의 직무수행에 대한 감시·비판·견제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고, 비슷한 취지의 언론보도가 이어지고 있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어 “국정원이나 (같은 보도를 한) 에스비에스(SBS)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등을 통해서도 (논두렁 보도에 이 전 부장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명확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었으므로 노컷뉴스 기자들이 그런 의혹을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전 부장의 입장이 기사에 담긴 점도 손해배상 책임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대법원은 “‘검찰이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일을 한 사실은 전혀 없다’는 이 전 부장의 주장도 함께 보도하고 있는 사정 등에 비추어 보면 1기사가 이 전 부장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오연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