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인물인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채 상병 사건 기록 회수 당일 이시원 당시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과의 통화 내용에 대해 ‘군 사망 사건 처리 방향에 대한 보고서 요구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군인 사망 사건 수사권을 민간 경찰로 넘긴 뒤 처음으로 사건 기록이 군 경찰에서 민간 경찰로 넘어갔다가 되돌아왔는데, 이런 사태를 ‘교통정리’하는 데 대통령실이 적극 나선 정황으로 보인다. 사건 전반에 걸친 대통령실의 관여 의혹이 더욱 짙어지게 됐다.

8일 한겨레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사건 관계자들을 취재한 결과, 지난해 8월2일 당시 이시원 비서관은 유 법무관리관에게 전화해 ‘군사법원법 개정에 따른 군 사망 사건 처리의 방향에 대한 의견을 담아 대통령실에 보고하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유 법무관리관 쪽은 군 사망 사건 전반에 대한 의견을 보고하라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당시 통화를 “군 사법정책과 관련한 대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가장 큰 현안은 채 상병 사건이었기 때문에, 이런 요구는 ‘군 사망 사건 이첩 때 관련자의 혐의를 적시하지 말라’는 등의 무리한 지시 이후 벌어질 논란을 대통령실 차원에서 대비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 전 비서관은 당시 채 상병 사건 기록 회수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국방부의 기록 회수 의사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과장→경북경찰청 수사부장 순서로 전달됐기 때문이다. 사건 기록 회수의 시작부터 관여했던 공직기강비서관실이 향후 ‘법무 대응’까지 고심한 셈이다.

유 법무관리관은 실제 지난해 8월2일 이후 이 전 비서관이 요청한 보고서를 지속적으로 제출했고, 대통령실과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해당 보고서를 두고 유 법무관리관 쪽은 ‘군 사법정책과 관련한 일반론’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채 상병 사건 처리와 관련한 법률 대응 내용도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 공수처가 해당 보고서를 입수한다면 대통령실이 이첩 보류, 혐의 배제, 기록 회수 등 이 사건 전반에 걸쳐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등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시원 전 비서관은 입장을 묻는 한겨레의 문의에 답하지 않았다.

기록 회수는 이첩 보류 지시 등과 함께 이번 사건의 핵심 의혹 중 하나이다. 특히 대통령실이 기록 회수에 직접 관여했다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인정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군법무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한겨레에 “기록 회수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대통령실 등이 법에 근거도 없이 기록 회수에 관여했다면 직권남용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전광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