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에서 가장 큰 문제는 피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혈액형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수혈자의 면역체계가 기증받은 혈액세포를 공격하는 사태가 일어나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혈액형은 적혈구 표면에 있는 항원 당단백질에 따라 A형과 B형, O형으로 나뉜다. A항원이 있으면 A형, B항원이 있으면 B형, 둘 다 있으면 AB형, 둘 다 없으면 O형이다.

혈액형에 상관없이 수혈을 받을 수 있도록 혈액형을 바꿔주는 효소가 발견됐다. 덴마크공대와 스웨덴 룬드대 연구진은 적혈구의 A항원과 B항원을 제거해주는 효소를 장내 미생물에서 발견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물학’에 발표했다.

효소를 이용해 항원을 제거한다는 개념은 40여년 전 처음 등장했다. 1982년 B형 적혈구 표면의 항원을 제거할 수 있는 효소를 커피콩에서 추출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A, B 항원을 제거하는 효소들이 여럿 보고됐다. 2019년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연구진이 플라보니프랙터 플라우티이(Flavonifractor plautii)라는 장내 미생물에서 A형을 O형으로 바꿔주는 효소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 나온 것들은 효율이 낮거나 모든 면역 반응을 제거해주지는 못해 실제 임상에는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연구를 이끈 마헤르 아부 하켐(Maher Abou Hachem) 교수는 “이번에 발견한 효소는 처음으로 A와 B 항원뿐 아니라 이전에 인식되지 않았던 항원 변종까지도 제거해준다”며 “거부 반응이 없는 혈액 생산에 더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A형보다 B형에 더 잘 작용

연구진은 장 표면의 점액을 분해해 영양을 섭취하는 장내 미생물 ‘아커만시아 뮤시니필라’(Akkermansia muciniphila)에서 이 효소를 발견했다. 이 효소가 분해하는 장 점막 표면의 복합 당분자는 적혈구 표면의 당 분자와 화학적 구성이 비슷하다. 이는 이 효소를 이용하면 혈액형 항원도 분해할 수 있다는 걸 뜻한다.

이 장내 미생물은 사람의 장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박테리아로 점액의 주요 구성 물질인 뮤신을 분해해 탄소, 질소와 유익한 화합물을 생성하는 유익균이다.

연구진은 이 박테리아가 만드는 24가지 효소를 여러 형태로 조합해 수백개의 혈액 표본을 대상으로 항원 제거 효과를 시험했다. 그 결과 혈액형 항원을 제거하는 효능이 우수한 효소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효소들은 특히 A형 항원보다 B형 항원에 더 잘 작용했다. 연구진은 A형과 B형 적혈구 200ml를 O형으로 전환하는 데 각각 18mg과 8mg의 효소가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아부 하켐 교수는 “B형 헌혈자의 혈액은 거부반응이 없는 단계에 가까워졌지만 A형 헌혈자의 혈액은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연구 초점은 다른 걸림돌이 있는지와 거부반응을 완전히 없애려면 효소 조합을 어떻게 더 개선해야 하는지 밝혀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헌혈받은 피를 혈액형 거부반응이 없는 보편적 혈액으로 바꿀 수 있게 되면 혈액제제의 운송이 쉬워지고 혈액 낭비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선 또 다른 면역 거부 반응인 Rh 인자에 대한 실험은 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새 효소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는 한편 앞으로 3년 반 동안 추가 연구를 진행하고 나면 임상시험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38/s41564-024-01663-4
Akkermansia muciniphila exoglycosidases target extended blood group antigens to generate ABO-universal blood.

곽노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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