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2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생산 비중이 20%에 육박하며 대만을 제치고 세계 2위에 오를 것이란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의 분석이 나왔다. 2022년 기준 한국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중국과 대만에 이어 세계 3위다. 다만 첨단 공정 반도체는 미국이 적극적으로 첨단 팹(반도체공장)을 유치함에 따라, 한국의 비중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함께 8일(현지시각) 공개한 ‘반도체 공급망의 새로운 회복 탄력성’ 보고서를 보면, 2023년 세계 반도체 시장 생산능력(캐파)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2022년의 생산 비중(17%)보다 2%포인트 증가한 수치로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22년 기준 한국의 반도체 생산 비중은 중국(24%)과 대만(18%)에 이어 일본과 공동 3위였지만, 2032년에는 중국(21%)에 이어 두 번째로 높고 대만(17%)과 일본(15%), 미국(14%)에도 앞서게 된다는 것이 협회의 분석이다.

이런 판단의 배경으로는 반도체 공장 증설이 꼽힌다. 협회는 앞으로 8년 동안 한국의 반도체 생산능력 증가율을 129%로 추정했다. 이는 유럽(124%)과 대만(97%), 일본(86%), 중국(86%) 등에 앞선 수치다. 협회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초기 투자에 나섰고,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세계 반도체 리더로 성장하도록 지원했다”며 “한국은 2047년까지 4710억달러(약 645조원)를 들여 경기도에 16개의 신규 팹(반도체 생산라인)을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첨단 공정을 비롯해 1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31%에서 9%로 크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같은 기간 대만의 점유율도 69%에서 47%로 하락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법’을 앞세워 자국 내 공장 건설 등 설비 투자가 늘어난 데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생산 보조금(390억달러)과 연구개발(R&D) 지원금(132억달러) 등 모두 527억달러(75조5천억원)를 지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32년 미국의 반도체 생산능력 증가율은 2022년 대비 3배 수준(203%)으로 늘고, 생산 점유율도 10%에서 14%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협회는 “반도체 지원법이 없었다면 미국의 점유율은 2032년 8%로 떨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미국의 10㎚ 이하 반도체 생산 점유율은 2022년 0%에서 2032년 28%로 대폭 늘어날 것으로 관측됐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산업 지원과 관련한 기자들의 물음에 “정부는 ‘대기업 감세’, ‘부자 감세’라는 비판과 공격에 직면하면서도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세제 지원을 추진했다”며 “시간이 보조금이라는 생각으로 규제를 풀고 속도감 있는 사업 진행을 도와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세액공제를 하면 (사실상) 보조금이 되는 것”이라며 “재정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우리 기업들이 국제 경쟁력이 밀리지 않게 지원을 강화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는 보고서에서 나라별 반도체산업 인센티브 규모를 분석했는데, 한국은 550억달러의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투자펀드를 통해 1420억달러를, 일본은 보조금으로 170억5000만달러를 지원한다. 대만은 160억달러의 세제 혜택을 준다.

김경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