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과거가 바뀌어도 류선재(변우석)는 반드시 임솔(김혜윤)을 구해낸다. 20대 솔이 고등학교 때 어느 지점으로 돌아가 저수지에 빠져도, 또 다른 지점에서 납치를 당해도 선재는 어김없다. 임솔은 선재가 사망한 현실을 바꾸려고 계속 과거로 가는데, 과거 속 선재는 솔이 어려움에 부닥칠 때면 자꾸 나타나 목숨을 건다. 한 누리꾼은 블로그에 “아무리 과거가 바뀌어도 임솔만을 구해내는 류선재가 애틋하다”고 썼다.

선재처럼 사랑을 위해 헌신하는 남자 주인공이 관심받고 있다. 요즘 인기인 ‘선재 업고 튀어’(tvN) 류선재가 대표적이다. 이 드라마를 기획한 김호준 책임피디(CP)는 “요즘 시대는 상황과 조건을 따지며 사랑하는데 선재를 보면서 이렇게 헌신하는 남자 주인공은 오랜만이라는 반응이 많다. 익숙하지만 잊고 있던 사랑의 감성을 건드린 부분이 인기 요인”이라고 했다. ‘선재 업고 튀어’ 원작인 ‘내일의 으뜸: 선재 업고 튀어’에선 임솔이 선재를 살리려고 일방적으로 헌신하지만, 드라마에서는 남녀 주인공이 서로를 구하는 쌍방 구원 서사로 바뀌었다.

마지막 회 24.8%(닐슨코리아 집계)로 티브이엔 역대 최고 시청률(회차 기준)를 경신한 ‘눈물의 여왕’ 속 남자 주인공 백현우(김수현)도 헌신적인 사랑으로 눈길을 끌었다. 평범한 집안 남자가 재벌 여성을 만나 ‘머슴살이’ 하면서도 “그냥 해인이 옆에 그렇게 살고 싶었다”고 말한다. 현우가 재벌가 생활을 견디고 극복하는 과정 자체가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헌신인 것이다. 김 책임피디는 “헌신의 과정을 스케일 있게 보여준 것이 ‘눈물의 여왕’이고 소박하게 보여준 것이 ‘선재 업고 튀어’”라고 했다.

헌신하는 사랑은 젊은 세대를 티브이 앞으로 끌어들었다. ‘눈물의 여왕’은 지난해와 올해 방영한 모든 드라마 중에서 20~40대 타깃 시청률 1위였고, ‘선재 업고 튀어’는 20~40대 시청률이 현재 전 채널 동 시간대 1위다. 특히 ‘선재 업고 튀어’는 2030 세대에서 반응이 도드라진다. 티브이엔에 따르면 여성 20대 시청률이 전 채널 기준으로 올해 방송한 평일 드라마 중에서 가장 높았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5월 첫째주 티브이-오티티 드라마 화제성 조사결과에서도 1위에 올랐다. 티브이엔은 “2030 세대가 많이 보는 오티티(OTT) 티빙에서 시청시간이 갈수록 늘었고, 8회 기준 온라인 언급량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티브이엔에서 방송한 월화드라마 평균 보다 7배로 높다”고 밝혔다.

마음을 숨기고 차갑게 대하거나(‘밤에 피는 꽃’·MBC), 지질하고 나쁜 남자(‘내 남편과 결혼해줘’·tvN)가 사랑받는 가운데 2030 세대가 헌신적인 남자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모든 것이 경쟁인 ‘현생’을 살면서 누군가가 나를 보살펴줬으면 좋겠다, 힘든 생활을 견디게 해주는 연애를 하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것”이라고 했다.


 


남자 주인공이 헌신한다고 다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선재 업고 튀어’와 ‘눈물의 여왕’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에 걸맞은 밝은 분위기를 담는데 성공하며 헌신적인 사랑에 대한 관심을 드라마 전체로 확장했다. 특히 ‘선재 업고 튀어’는 지난해 한국에서도 ‘상친자’(‘상견니’에 미친 자)를 형성했던 대만드라마 ‘상견니’ 같은 청량한 분위기를 내는데 성공하며 ‘선친자’(‘선재 업고 튀어’에 미친 자)를 양산했다. 티브이엔 관계자는 “촬영 초반 수일간 촬영한 분량을 다 엎고 재촬영까지 하면서 드라마 전체 분위기를 잡아가는데 신경 썼다”고 했다. 김 책임피디는 “타임슬립이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게 과거로 간 순간 시청자들이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게 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했다. 청량한 분위기와 이들이 왜 과거로 왔는지 그 헌신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고 했다.

팬덤이 생기자 ‘덕질하는 로코’를 만들려고 4회부터는 유튜브나 티빙에서 미방영분 영상을 따로 내보낸 전략도 성공했다. 2월26일부터 5월2일까지 ‘선재 업고 튀어’ 관련 영상 콘텐츠 총 누적 조회수는 3억5000만뷰가 넘는다. 특히 솔이처럼 200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시청자들이 솔이가 유시시(UCC)를 촬영한 장면이나, 관심 가는 상대의 싸이월드를 몰래 훔쳐 보다가 방문 이벤트에 당첨되어 당황한 장면 등에서 그 시대를 추억하며 특히 공감한다. 구자영 씨제이이엔엠 미디어산업본부 마케팀담당은 “‘선재 업고 튀어’는 요즘 드라마와 달리 유튜브 요약본 조회수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모든 장면과 주인공의 행동 등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은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남지은 기자